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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

돈과 자유

by 맬랑꼴리아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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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는 과연 언제 오는 것인가?

 

그런데 경제의 기본속성이 불안정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신뢰를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으며, 신뢰가 얼마나 연약한 식물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연약한 식물이 계속 생명을 유지하도록 인위적인 간섭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신뢰의
연약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화폐는 노동의 전문화에서 생겼고, 거꾸로 노동의 전문화를 심화시켰다. 화폐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의 전문화는 한 개인의 경제생활을 다른 개인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고대에 각 개인이 특별한 기술에 숙달되면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보다는 자신의 전문화된 물건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하나의 기술에 바치면서 개인은 독립성을 잃었다. 도공이 도기를 자신이 필요한 수량 이상으로 만들면 그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필요한 다른 물건을 만들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다른 물건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야 한다. 이 의존은 많은 경우에 평등하지 못하여 자유를 잃게 되었다.
  

가발을 만드는 사람은 쌀을 생산하는 사람과 대등하지 못할 것이다. 흉년에 그가 굶어죽지 않으려면 평소에 농민에게 허리를 굽혀야 한다. 농민이 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평등함을 주장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화폐의 유통이 없었던 장원경제에서도 영주와 기사는 방어의 일을 맡았고, 무기소지를 금지 당한 평민은 일상업에 종사하였다. 이들은 더 이상 독립적이 아니고 그만큼 자유를 잃었다.
  

화폐의 사용은 노동의 전문화를 심화시키면서 개인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었다. 개인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전보다 더 의존하여야 하지만 그 의존은 화폐로 인하여 평등한 것이 되어 자유를 잃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많은 경우에 화폐는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킨다. 섬머세트 모옴은, 노벨상은 타지 못하였으나 돈은 많이 벌어 자유롭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돈이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은 화폐가 모든 상품과 대등한 보편상품(universal commodity)이기 때문이다. 화폐의 올바른 관리가 중요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화폐가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최대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제도는 장점과 단점을 아울러 갖고 있다. 화폐제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화폐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회복시키고 보장하지만 때에 따라 위협도 하였다. 지금은 화폐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국가는 화폐량을 조절하고 규제하고 다스리는 정돈된 제도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각종의 화폐 객체인 화폐, 주식, 채권 등에 대하여 익숙하다.
그러나 화폐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화폐 객체와 새로운 경제제도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최초의 금화와 은화의 출현, 최초의 지폐의 등장, 최초의 환어음의 소개는 그것이 정착할 때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서 의혹의 눈총을 받았다. 새로운 화폐제도의 출현은 새로운 파탄과 퇴보의 씨를 잉태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나아가 화폐제도의 성쇠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의혹, 염려, 불안은 불신이다. 이 불신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화폐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에서 나온다.

  

 

역사의 여러 시점에서 수많은 사회는 화폐경제가 지닌 단점을 인식하는데 실패하였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항구 피라우스가 지중해 세계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주로 화폐제도의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인들은 그들의 긴 역사를 통하여 화폐단위와 무게를 변경시키지 않았다. 이같은 화폐제도는 역사상 보편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예외에 속한다.
  

현대인들은 삼백년 전 그들의 조상들과는 달리 지폐나 환어음의 사용에 대하여 의혹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인들도 화폐적 현상에 대하여는 역시 불안해 한다. 그 현상으로 해를 입을까, 손실을 볼까 염려스럽다. 나아가 그 현상으로 
자신의 경제적 자유가 제한될까 걱정스럽다.
  

화폐는 신뢰의 상징이다. 신뢰는 더 이상의 정확한 정보가 결핍되었을 때 뛰어 넘어야 할 차원이다. 신뢰냐, 불신이냐는 개인, 단체, 정부의 특성에 대한 개인의 평가에 따른다. 이 평가는 그가 얼마나 자유스러우냐에 달려 있다. 신뢰의
연약함은 개인의 자유의 연약함에서 비롯한다.
  

20세기 초 유럽이 화폐가 와해되었던 경험은 케인즈(J.M.Keynes)와 동시대의 빅토리아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케인즈는 화폐정책의 제일 목표가 화폐적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케인즈에 의하면, 화폐가치의 변화는 사회의 모든 단체와 계층에 불평등한 영향을 남긴다. 케인즈는 화폐가치의 하락이 가져오는 정신적 긴장과 증오를 우려하였다. 화폐가치의 하락의 결과 기업가가 혜택을 받는다면 그것은 치욕이다. 이것은 소비자에게는 결과로 보이지 않고 원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에 대한 신뢰는 손상된다. 또한 한 계층의 혜택은 다른 계층의 희생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의 정신적 긴장을 촉발시킬 수 있다. 케인즈는 이와 같은 일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그는 정부의 간섭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누구인가. 그리고 간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화폐현상의 처방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는가.
  

사이먼스(H.C.Simons)를 비롯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물음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그들은 정부의 화폐정책에 그 능력 이상으로 역할이 부여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사이먼스가 케인즈의 위대한 저서 "일반이론"을 
읽고 맹렬히 비판한 내용을 보면 화폐질서에 대한 정부 간섭이 개인의 자유를얼마나 위협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자유화폐질서를 옹호한다. 자유화폐질서는 정부나 정치적 이해단체에 의한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간섭이
배제된 법질서이다. 이들의 정부관에 의하면, 정부는 "좋은 의도로 시작하여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서(the road to the hell is paved with a good will)" 개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고, 나쁜 의도라면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 
화폐로 인하여 신장된 자유가 정부의 간섭으로 억압될 때 이같은 화폐제도는신뢰 이전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아무도 법에 호소하는 사람은 없다.
  

여러분은 길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를 경험했을 것이다. 경미한 사고를 놓고 소액의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길에서 다투고 법에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투는 그 순간에도 정부의 화폐량 증가 조치로 여러분의 은행예금의 실질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금 규모가 클수록 떨어지는 금액도 크다. 접촉사고의 손해배상액과 비교도 안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아무도 정부를 상대로 법에 호소한 사람은 없다. 이 어찌 아이러니가 아닌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화폐경제의 기본속성이 안정적이라고 믿는다. 경제란 인위적인 간섭이 없을 때 가장 안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 이래 자유방임주의의 기본 철학이다. 지난 2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을 감탄하게 하였던 단일주제는 상품거래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결정들이 전체적으로 놀랍게 통일된다는 것이었다. 이 감탄은 경제란 스스로 안정을 추구하는 힘이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었고, 이에 근거하여 인위적인 간섭을 배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에 의하면 과거의 화폐제도의 부침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해서라기보다는 정부의 관리 실패 때문이라고 보고한다. 신뢰는 연약한 식물이지만, 그 자신 안정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 식물에 대한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보호는 오히려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연약한 자유는 정부의 권력남용 하에서 가장 위협받는다. 자유가 유약하기 때문에 정부의 권력을
분산하듯이, 신뢰가 연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다.

 

모든 경험, 이론,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견해 차이는 아직 좁혀지지 않고 있고, 화폐현상에 대한 처방도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태에서 어떤 사람은 좌절을 느낄지 모르지만 이것이야말로 경제현실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우리는 열 명의 현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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